“아버지가 어머니를 밀쳤다”는 말이 처음 들렸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치매는 기억을 잃는 병이라 생각했지, 폭력과 분노의 감정까지 동반할 수 있다는 것은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의 말투는 날카로워졌고, 어떤 날은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처음엔 당황했고, 나중엔 서로를 원망하기도 했다.
이 글은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의 폭력적 언행을 경험하면서, 우리가 실제로 했던 대응 방법들을 정리한 기록이다.
어느 누구도 이런 상황을 겪고 싶지는 않지만, 막상 겪게 되었을 때 참고할 수 있는 진짜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1. 처음 폭력적인 행동을 마주했을 때 – “너 지금 누구야?”
처음으로 아버지가 분노를 표출한 건, 약 복용을 거부하던 날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약 드셔야 해요”라고 말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내 손을 탁 쳐내며 소리쳤다.
“나한테 명령하지 마! 네가 뭔데?”
그날 아버지는 나를 딸이 아니라 낯선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처음엔 너무 충격이었다.
눈빛도, 말투도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나는 그날 밤 혼자 방에서 울며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사라졌어.”
2. 말리지 않기로 했다 – 감정이 격해졌을 때의 원칙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제지하려 했다. 팔을 붙잡고, 억지로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럴수록 아버지는 더 흥분했다.
그래서 우리는 원칙을 세웠다:
- 분노가 터질 때 신체적으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 절대 반박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 감정이 고조되면 잠시 조용히 거리를 둔다
- 필요 시 다른 가족이 교체 돌봄을 맡는다
이 원칙을 정한 후, 우리는 갈등의 빈도를 줄일 수 있었다.
치매 환자의 분노는 이성이 아니라 ‘혼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3. ‘트리거’를 파악했다 – 언제 분노가 올라오는지 관찰
우리는 아버지의 행동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특정한 시간대, 특정한 장소, 특정한 말에 반응이 격해졌다는 패턴이 나타났다.
예를 들면:
- 식사 전 혈당이 낮을 때
- 낮잠에서 막 깼을 때
- 강압적으로 말할 때 (“이거 해야 해요” 등)
- 욕실에서 옷을 벗기려 할 때
이런 ‘트리거’를 피하거나 상황을 부드럽게 조절하면서,
아버지의 분노 반응을 줄일 수 있었다.
때로는 타이밍 하나, 말투 하나가 폭발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4. 정서적 안정 방법을 만들었다 – 루틴 + 감각 자극
아버지가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날은 조명, 음악, 향기 등을 이용해 환경 자체를 바꿨다.
예를 들어 저녁 무렵에는 은은한 조명을 켜고, 아버지가 좋아하던 트로트를 틀어줬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거나, 예전 사진을 보여주며 감정을 부드럽게 연결했다.
또한, 하루 일과에 짧은 산책, 간단한 퍼즐 맞추기, 손 마사지 같은 활동을 넣었다.
이런 작은 루틴은 정서적 불안을 줄여주는 데 큰 도움이 됐다.
5. 한계를 느꼈을 땐 외부 도움을 받았다 – 치매전문상담 요청
어느 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심하게 소리를 지르고 팔을 붙잡는 장면이 벌어졌다.
그날 우리는 스스로 한계에 다다랐다는 걸 인정했다.
치매안심센터에 연락해 전문상담을 요청했고, 간호사 선생님이 방문해 상황을 진단해줬다.
또한, **일시적 쉼터 서비스(단기 주간보호시설)**에 아버지를 잠시 위탁하며
우리 가족도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 외부 지원은 ‘패배’가 아니라 ‘전략’이다.
감정적으로 붕괴되기 전에 도움을 요청하는 건, 지혜다.
결론
치매 환자의 폭력적 행동은 가족에게 깊은 상처와 죄책감을 동시에 안긴다.
우리도 처음엔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고, 때로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깨달았다. 그 행동은 아버지의 본심이 아니라 병의 그림자라는 것을.
지금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가족이 있다면 꼭 전하고 싶다.
절대 혼자 감당하지 말고, 감정의 무게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고.
폭력은 멈출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가족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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