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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부모님 돌보며 내가 무너졌던 순간들 – 감정일기

by info-abc1 2025. 7. 31.

누군가를 간병하는 일은 단순한 책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일 조금씩 나를 잃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치매 진단이 내려진 후, 우리 가족의 모든 일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아버지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가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웃지 않았고,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 글은 치매 부모님을 돌보며 내가 겪었던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 그리고 마음이 무너졌던 그날의 기록이다. 이 일기는 완벽한 조언도, 해결책도 아니다. 다만 누군가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라고 느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치매 부모님 돌보며 내가 무너졌던 순간들 – 감정일기

1. 처음 무너졌던 날 – “아버지가 나를 몰라봤던 순간”

그날은 평범한 오후였다.
간식을 드시고 있던 아버지가 문득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누구냐?”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나는 웃으면서 “아빠, 나야. ○○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그런 이름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 순간,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입꼬리는 웃고 있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화장실에서 조용히 울었다. 세면대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맞춰, 내 숨소리도 무너졌다.


2. “내가 자식인지 간병인인지 헷갈릴 때”

하루는 아버지가 화를 냈다.
“왜 맨날 따라다녀! 나도 사람인데 혼자 있게 놔둬!”
그 말이 너무 서러웠다. 나는 그저 보호하려 했을 뿐인데, 아버지는 나를 감시자로 느꼈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자식이라는 정체성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자식으로 이걸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간병인인가?’
그 질문은 매일 나를 따라다녔다.


3. 형제들과의 갈등 – “왜 나만 이러고 있어야 하지?”

나는 장녀였다.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챙기는 역할은 나에게 맡겨졌다.
형제들은 “고맙다”는 말은 했지만, 정작 실질적인 돌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어느 날, 형에게 “가끔이라도 좀 맡아줄 수 없어?”라고 말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너가 더 잘하잖아.”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멍해졌다.
그날 밤, 부모님의 방에 불을 꺼주고 나서… 거실에서 한참을 앉아 울었다.
나는 그때 진심으로 가족이라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


4. “내 삶이 멈췄다고 느낀 그 밤”

어느 금요일 밤,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우리 예전처럼 맥주 한잔할래?”
순간 나는 답을 할 수 없었다.
밖에 나간다는 생각조차 사치처럼 느껴졌고, 내가 사회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지금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이 마음속에서 점점 커졌다.

그날 이후, 나는 일주일에 단 한 번이라도 내 시간 1시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정말로 나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치매 가족을 돌보는 일은 단순히 일상적인 노동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굴곡, 인간관계의 충돌, 나 자신과의 싸움이 반복되는 고된 여정이다.
나는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말할 수 있다.
그때 무너졌던 감정들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고.

이 글이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당신도 충분히 힘들다. 그 마음, 절대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