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가족을 간병하는 동안, 나는 늘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괜찮다는 말은 결국 나를 무너뜨리는 말이었다.
누구도 묻지 않았다. “넌 요즘 어때?”라고.
하루에 12시간 넘게 부모님의 일상을 지켜보며, 나는 점점 감정을 잃어갔다.
불면, 불안, 공황, 탈진...
치매 환자만이 병을 겪는 게 아니었다. 가족도 병들어 간다.
이 글은 치매 간병을 2년 넘게 해온 내가, 그 후 남은 ‘보이지 않는 병’들에 대해 솔직히 고백하는 기록이다.
혹시 당신도 지금 간병 중이라면, 절대 혼자 아파하지 않길 바란다.
1. 불면증 – “밤이 오는 게 무서워졌다”
간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나는 잠을 자는 게 불안해졌다.
혹시 새벽에 화장실을 가시다 넘어지면 어쩌지?
혹시 내가 모르게 문을 열고 나가버리면?
이런 걱정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고, 귀가 항상 열려 있는 상태로 잠을 잤다.
결국 내 수면은 ‘깊은 잠’이 아니라 ‘대기 상태’였다.
잠이 부족하니 짜증이 늘었고, 감정 기복도 심해졌다.
몸보다 먼저 무너진 건, 휴식의 리듬이었다.
2. 불안과 공황 – “문득 숨이 안 쉬어지는 순간들”
가끔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오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숨을 쉬기 어려워서 창문을 열고 한참을 앉아 있어야 했다.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고, 심장 이상인 줄 알았지만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성 불안”**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런 증상이 반복될수록 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내가 약해졌구나.’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약한 게 아니라 지속적인 압박에 대한 몸의 비명이었다.
3. 감정 무감각 –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났다”
하루하루 똑같은 루틴. 약 챙기고, 식사 준비하고, 옷 갈아입히고, 화장실 보조하고.
이 모든 걸 1년 넘게 반복하다 보니, 내 감정이 말라버렸다.
웃음도, 분노도, 눈물도 나오지 않는 상태.
사람들은 “넌 참 잘 견디고 있어”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더 외로웠다.
내 안에는 무언가 쌓이고 있었고, 언젠가는 터질 거라는 불안만 남아 있었다.
4. 외부 단절 –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졌다”
친구들의 연락은 점점 줄었다.
내가 먼저 나갈 수 없었고,
간병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피곤했다.
어느 순간, 사회적 관계를 스스로 차단하게 됐다.
나중에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불편해졌고,
지하철이나 카페 같은 공공장소에 가면 괜히 눈치가 보였다.
세상과 멀어질수록, 나는 내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5. 병원에 가서야 인정했다 – “이건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결국 나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그곳에서 의사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간병 우울증입니다. 전형적인 스트레스 과부하예요.”
그제서야 나는 이 모든 증상이 내가 이상해서 생긴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의사의 한마디는 나에게 구조신호 같았다.
나는 병이 아니라, 지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간병하는 사람도 정당하게 지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간병은 사랑이지만, 사랑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 과정을 통해 많은 걸 배웠지만, 동시에 많은 걸 잃기도 했다.
이제는 안다. 간병자는 돌봄의 주체가 아니라, 또 다른 환자일 수 있다는 것.
지금 간병 중인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너무 오래 참지 말라고.
그리고 ‘병들지 않아야 좋은 가족’이 아니라,
나 자신도 소중히 여겨야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걸 기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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