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가 갑자기 화를 내고 손을 올린다면?
가족 중 치매를 앓고 있는 분이 갑작스럽게 화를 내거나, 욕설을 하거나, 심지어 물리적인 행동까지 보일 때, 보호자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평소엔 그렇게 온순한 사람이었는데”, “나를 알아보지 못해서 그런 걸까?”, “왜 갑자기 이렇게 변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당황스러움과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오곤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행동이 환자의 ‘성격 변화’가 아니라 뇌 기능 저하로 인한 증상(BPSD: 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 중 하나라는 점입니다. 치매가 진행되면 언어 능력, 판단력, 감정 조절 능력이 함께 떨어지게 되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한 불편함이나 불안이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출될 수 있습니다. 즉, 폭력적인 행동은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 ‘도와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폭력 행동의 원인, 행동 그 자체보다 감정에 주목해야 합니다
치매 환자의 폭력적 행동은 대부분 외부 자극에 대한 감정적 반응에서 비롯됩니다. 낯선 공간, 새로운 사람, 이해되지 않는 말, 몸에 닿는 접촉, 특정 소음이나 냄새 등이 혼란이나 두려움을 유발하면서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옷을 갈아입히거나, 씻기려 할 때 갑자기 손을 뿌리치거나 밀치는 경우, 이는 수치심이나 불쾌감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행동으로 드러난 것일 수 있습니다.
또한 통증, 배고픔, 졸림, 배뇨 욕구처럼 신체적 불편함을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폭력적인 반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폭력은 행동 자체보다 그 이면에 있는 원인과 감정을 이해하려는 접근이 중요합니다. “왜 때렸지?”보다 “혹시 지금 뭔가 불편한 게 있을까?”라고 생각해보면, 보호자의 반응도 훨씬 부드럽고 효과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효과적인 대응 요령: 감정을 맞서지 말고 흘려보내기
치매 환자의 폭력 행동에 대응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즉각적으로 맞서거나 반박하지 않는 것입니다. 환자가 감정적으로 고조되어 있을 때 “왜 그래!”, “하지 마세요!”, “그건 틀렸어요!” 같은 말은 오히려 불안과 분노를 증폭시키는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대신, 조용한 목소리로 “괜찮아요”, “지금 놀라셨죠?”, “이제 그만 쉬어볼까요?”처럼 감정을 수용하는 반응이 효과적입니다.
가능하다면 자리를 잠시 피하거나, 대화를 중단하고 주의를 다른 것으로 전환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주거나 손을 살짝 잡고 산책을 유도하는 등의 행동 전환이 긴장된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환자가 진정된 후에는 “아까 많이 놀라셨죠. 불편한 게 있었어요?”처럼 이해와 위로 중심의 피드백을 주면, 관계 회복에도 도움이 됩니다.
보호자 자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대응입니다
치매 환자의 폭력적 행동은 보호자에게도 심리적 상처와 신체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자신만의 감정 안전장치와 대처법을 준비해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반복적인 행동이 예고될 경우에는 도우미의 도움을 받거나, 위험한 물건을 미리 정리해두고, 보호자 자신도 피할 수 있는 출구를 확보해두는 방식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만큼 자신을 지키는 일도 절대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반복된 폭력 상황이 감정적 번아웃을 유발하거나 우울 증세로 이어진다면, 전문가의 상담이나 지역 치매안심센터, 가족교육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치매 환자의 폭력 행동은 돌봄의 실패가 아니라, 질병의 일부이자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지나는 당신은, 분명 누구보다 강하고 따뜻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