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병이 기억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치매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보통 혈압, 혈당, 식습관, 운동 같은 신체적인 요인에만 주목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서적·심리적 요인이 치매 발병에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장기적인 스트레스와 반복적인 우울감은 뇌 건강을 위협하고 인지 기능 저하를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두 번의 슬럼프나 단기적인 스트레스로 치매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만성화되고, 우울한 감정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이는 뇌의 구조와 기능 자체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뇌 속 신경전달물질의 균형과 연결되어 있고, 그 균형이 흔들리면 기억력, 집중력, 판단력에 영향을 주는 인지 기능 전반이 약화되기 시작합니다. 결국 마음의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물리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뇌를 어떻게 바꾸는가: 호르몬과 해마의 변화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은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단기적으로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반응이지만,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이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며 뇌의 특정 부위에 손상을 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부위가 바로 **해마(hippocampus)**인데, 이곳은 기억 형성과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중요한 뇌 영역입니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만성 스트레스를 경험한 사람들의 해마 부피가 감소하고, 단기 기억과 학습 능력이 저하된다는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코르티솔 수치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면 뇌세포의 손상이 가속화되고, 새로운 신경세포 생성이 억제되어 뇌의 복구 능력도 떨어집니다. 이러한 변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기억력 감퇴와 혼란, 감정 기복 등의 증상으로 나타나며, 결국 치매와 연결될 수 있는 위험 요인이 됩니다. 스트레스를 ‘가벼운 감정의 문제’로만 여기기에는 그 파급력이 생각보다 큽니다.
우울증과 치매의 연관성,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닙니다
우울증은 단지 기분이 우울한 상태가 아닙니다. 뇌 내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과 기능적 이상이 동반되는 의학적 질환이며, 특히 노년기 우울증은 치매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의욕이 없는 상태를 넘어서, 기억력 저하, 언어 둔화, 판단력 감소 등 치매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학계에서는 우울증이 치매의 전조증상일 수 있다는 관점과, 반대로 우울증 자체가 치매 위험을 높이는 독립적인 인자라는 두 가지 시각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와 여러 연구 기관은 중년기 이후의 반복적 우울증이 알츠하이머병 발병률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뇌의 전두엽, 해마, 편도체의 기능이 저하되어 감정과 인지를 동시에 조절하는 능력이 약화되기 때문에, 치매로의 이행 가능성이 커지는 것입니다. 우울증은 반드시 ‘마음의 감기’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정신 건강 돌봄이 치매 예방의 중요한 열쇠입니다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식단을 조절하고, 건강검진을 받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내 마음을 잘 돌보는 일, 그리고 감정의 징후를 제때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습관입니다. 스트레스와 우울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이지만, 이를 오래 방치하거나 “이 정도쯤이야”라고 넘기면 뇌가 가장 먼저 반응하게 됩니다.
일상 속에서 감정일기를 쓰거나, 가까운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취미 활동을 통해 기분을 환기시키는 습관은 매우 큰 예방 효과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경우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을 받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용기와 정서적 회복력을 키우는 것이 치매 예방의 든든한 기반이 됩니다. 몸과 뇌가 연결되어 있듯, 뇌와 마음도 언제나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합니다. 마음을 돌보는 일이 곧, 뇌를 지키는 가장 따뜻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